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인데…
어느 기분 좋은 가을 밤, 요즘 한창 인기인 카운터 테너 이동규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 청년은 내 친구 아들을 똑 닮았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 같은 인상이었다. 그가 헨델의 '옴 브라 마이후'를 부르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를 돌아봤다. 이런 목소리는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에는 명 짧고 고귀한 동물에서 느낄 수 있는 허무한 아름다움이 있다. 인간의 몸이라는 악기를 통해 천상의 음악이 지상의 우리 인간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든다. 뛰어난 성악가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이런 느낌을 전달하기 힘들다. 하지만 콘서트가 끝났을 때는 행복한 만족감이 아닌,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나의 사춘기 시절인 1960년대는 일본 각 가정에 전축과 피아노가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우리집도 아버지 사업이 잘되면서 전축을 구입했고, 여동생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드웨어는 갖춰졌지만 음악을 즐기는 감성이나 지식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전축은 있어도 음반이 없었고, 어떤 음반을 사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내 머릿속에는 클래식 음악은 특권계층의 사치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내가 재일 조선인이라는, 일본 사회의 저변계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는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우상파괴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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