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풀잎 역을 하게 되었다는 현이가, 그 동안 매일 학교에서 늦게 오고, 휴일(休日)에도 학교에 나가 연습을 하곤 할 때에는 별로 관심(關心)이 없었는데, 막상 공연하는 날이 되니까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현이 혼자의 발표회나 되는 것처럼 흥분되어, 2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무척 초조했다.
(나) ‘현이가 바로 저기, 저 많은 풀잎 중의 하나로 끼여 앉아 있는 거구나!’
순간, 지금까지 흥분해 있던 마음이 가시고, 실망(失望)되는 마음조차 터놓을 수 없는, 그런 야릇한 기분에 싸이고 말았다. 현이는 바로 그런 역을 맡고 있었다.
대장간 앞뜰에는 토끼도 나오고 포수도 나오고 동네 여인과 대장간 집 주인도 나와 익살스러운 대화(對話)를 주고받고, 그리고 때때로 참새 떼와 까치 떼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데, 풀잎들은 계속 줄지어 붙어 앉아서 양손에 들고 풀잎 그림판만 가끔 흔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