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우리 중에는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살아가는 중학교 3학년짜리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항상 누런 얼굴로 골목에 나와 있었는데, 누가 쉴 때에 잠시 우리 놀이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농구공을 잡는 것도 힘겨워 보일 정도로 힘이 없어 보였기에, 누구도 한패가 되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언제부터인지 모르는 사이에 농구를 잘 하게 되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어느 날 저녁, 우리는 두 패로 갈라서 건빵내기 농구 경기를 하였는데, 이 아이의 활약으로 그가 속한 팀이 이기게 되었다. 모두 놀랐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이 아이가 속한 팀이 꼭 이기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경기가 끝나고 뿔뿔이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이 아이는 윗동네 산꼭대기에 있는 움막 같은 판자촌에 살고 있어서 윗길로 가야 하는데, 우리 집 쪽으로 나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왜 집에 가지 않고 이 쪽 방향으로 오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집에 들어오니, 시골에서 친척 한 분이 올라와 있었다. 친척에게 몇 푼의 용돈을 탄 나는 군고구마를 사러 다시 골목길로 나갔다. 그런데 어두운 골목 끝 카바이드 등불이 출렁거리고 있는 군고구마 통 옆에 그 아이가 아저씨와 다정하게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튿날, 골목에서 그 아이를 만났을 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밤이면 팔다 남은 군고구마를 주고, 또 학비도 도와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배고픔을 잊게 되었고, 힘이 솟아나 농구를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 사연을 친구들에게도 퍼뜨렸고, 우리는 건빵내기 대신에 군고구마내기를 하게 되었다.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는 가난한 동네 아이 둘을 이렇게 돕고 있었다.
아저씨는 봄이 될 무렵, 다른 장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후에도 아이를 도와 주는 일은 그치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했던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가 우리와 한패가 되어 놀면서, 어질고 착하게 자라기를 빌던 아름다운 마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던 아저씨의 그런 따뜻한 정이 지금은 왜 사라지고 없을까?
어제 내가 아파트 문을 나설 때, 아이들이 골목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었는데 공이 내 앞으로 굴러왔다. 얼른 발로 아이들에게 차 주자, 아이들이 ‘와’ 하고 소리를 질러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공을 한 번 차 주어도 좋아하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