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수백 편의 개화 가사, 개화기 시조 등은 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는데, 애국, 개화 사상, 현실 비판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런가 하면, 한국 근대 최초의 신문인 '독립 신문'에는 충군, 애국, 진보 사상, 대동단결 등을 노래한 창가가 십여 편 실렸다. 창가는 찬송가와 같은 서양 음악의 가사를 적어 놓은 것으로, 4·4조의 정형성을 보여 주었다.
(나) 1920년대 초에는 백조, 폐허와 같은 동인지를 무대로 하여 주요한, 홍사용 등과 같은 시인은 허무, 병, 꿈, 눈물 등의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시를 써내었다.
1920년대 중반,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적극적인 저항 정신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김동환은 서사시집 '국경의 밤'을 발표했다. 최남선, 이은상, 이병기 등은 시조 부흥 운동을 일으켜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와 사상을 지키고자 했다.
이 시기에 독자적인 시 세계를 펼치며 활동한 중요한 시인으로 한용운과 김소월이 있었다. 한용운은 시집 '임의 침묵'에서, 임을 상실한 슬픔을 기다림의 의지로 승화시켜 독특한 사상사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에서 민요적 율격에 우리 민족 고유의 서정을 잘 담아 내어 서정시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다) '시문학'이라는 잡지를 무대로 하여 박용철, 김영랑은 순수시를 내세우면서 언어와 리듬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이며 일상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대표적인 순수시로, 1920년대 시가 보여 준 감상성과 이념성을 거부하고 순수 서정의 세계를 열어 보였다.
1930년대 시는 곧 모더니즘 시라고 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김광균은 시집 '와사등'에서 대상을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감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즘의 경향을 보여 주었다. 이상은 '오감도' 연작시에서처럼 내면 세계를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파헤치는 시를 썼다. 정지용은 서구 시의 시각과 표현 방식을 수용하는 데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 가서는 카톨릭주의, 동양적 세계, 자연시 쪽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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