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어느 가을 9월 보름께가 되자, 달빛이 밝게 비치고 맑은 바람이 쓸쓸하게 불어 와 사람의 마음을 울적하게 하였다. 길동은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책상을 밀치고 탄식하기를,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맹을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兵法)이라도 익혀, 대장인(大將印)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정서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오래도록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이 한 몸 적막하여, 아버지와 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