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50년 전의 어린이들은 종아리를 맞아 가며 컸다. 글공부를 잘 못 했다고 글방 선생님께 매를 맞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덕적인 이유로 아버지나 어머니께 맞는 경우가 더 많았다. 회초리로는 주로 싸리나무를 사용했으며, 매맞을 어린이에게 그것을 구해 오도록 명령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 물론 언제나 회초리로만 도덕 교육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정하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도록 훈계하는 말씀이 아침 저녁으로 잇따랐다. 말씀을 듣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곧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했다. 손님이 오시면 절을 올려야 했고 길에서 동네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드려야 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하면, 어른들은 “오냐, 밥 먹었니?”하고 대답을 하셨다.
(다) 일을 시키는 것도 인간 교육의 중요한 실습이었다. 특히 딸들은 시집 간 뒤에 흉을 잡히지 않도록 바느질이며 부엌일 따위를 실습으로 익혀야 했다. 그것은 또 가사를 도움으로써 사회 참여와 협동 정신을 습득하는 훈련이기도 하였다. 나는 아들로 태어났던 까닭에 바느질과 부엌일은 안 해도 되었으나, 밭에 씨를 뿌리고 풀을 뽑는 일, 집안을 청소하는 일, 도배할 때 풀을 바르는 일 따위는 면할 수가 없었다. 일거리가 생긴 것을 눈치채면 나는 곧 책상에 붙어 앉아 열심히 글공부를 했지만, 어머니는 봐 주시지 않으시고 나를 꼭 불러내어 근육 노동을 시키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