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누나와 나는 할머니로부터 무섭게 ⓐ지청구를 먹어 가며 그러잖아도 빠른 걸음을 더욱 재우쳤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않아 우리는 다시 수많은 인민군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두 줄로 서서 양쪽 길가로 내려오고, 우리는 그 사이를 뚫고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복판을 걸어갔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피란길이었다. 북쪽을 향해서 피란을 가는 우리를 인민군들은 아무도 시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까맣게 그은 얼굴을 들어 퀭한 눈으로 우리를 흘낏흘낏 곁눈질하면서 말없이 ⓑ행군(行軍)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