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삼국 통일 후 왕위는 진골 출신의 귀족 김춘추(후에 무열왕)의 직계 후손들이 거의 독점하였다.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은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왕의 권위를 크게 강화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문왕은 다른 진골 세력들의 반란을 누르고 전제 왕권을 확립해 나갔다.
5. 신문왕은 장인인 김흠돌의 반란을 계기로 많은 귀족들을 숙청하고 전제 왕권을 확립하였다.
6. ‘피리를 불면,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진다.’라고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만파식적은 왕권의 강화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7.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중앙의 정치는 왕의 직속 기관인 집사부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그 장관인 시중의 힘도 커졌다.
8. 시중은 집사부의 장관이고, 상대등은 화백 회의의 의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