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은주는 무뚝뚝하고, 서울 아이는 쾌활하다. 은주는 시골말을 쓰고, 서울 아이는 서울말을 쓴다. 은주는 키가 작고, 서울 아이는 키가 크다. 은주는 얼굴이 검고, 서울 아이는 얼굴이 희다. 은주는 향단이고, 서울 아이는 춘향이다.
나는 자꾸만 그렇게 은주와 서울 아이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래서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 사립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내가 전에 갖다 둔 것이 틀림없는 코스모스 꽃다발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채 아직도 거기 있었다. 묘한 부끄러움과 서글픔이 치밀어올랐다.
㉠나는 누가 볼세라, 얼른 말라비틀어진 코스모스의 잔해를 집어 들고, 은주네 집 앞을 벗어났다. 느낌에 은주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울 아이의 집에 간 것이 틀림없다.
당산 나무 거리에 나와 괜스레 어정거려 보았다. 그러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놀러 나오는 아이도 없었다. 추수가 다 끝난 들녘에 머무를 곳 없는 늦가을의 찬바람만 가끔씩 외로움을 견디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길 위에고, 논 위에고, 산 위에고,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숨어들었을까?
사람이 그립다. 나는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말을 나에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열세 살짜리들보다 웃자란 죄로 나는 외로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야 했다. 나는 열세 살의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계절의 틈에서, 그 틈 사이엔 외로움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