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원래가 목이 좋지 않아 어느 장사든 길게 가 본 적이 없는 싱싱청과물은 문을 연지 한 달 만에 셔터를 내리고야 말았다. 만두집, 돼지갈비 전문, 오락실 따위의 장사를 벌였던 이전의 주인들도 두세 달을 채우지 못했으니까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만 몇 푼이라도 가게 치장에 돈이 든 것이 아니고, 미처 팔지 못한 과일이나 부식은 식구들이 먹어치우면 될 것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큰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여자들은 수군거렸다.
(나) 참말로 딱하게 된 것은 원미동 여자들이었다. 이제까지 대어놓고 쓰던 경호네를 나 몰라라 하고 김 반장한테 돌아설 수가 없는 것이 김포 슈퍼 개업날에 무심코 던진 말들을 기억하고 있는 탓이었다.
“모쪼록 잊지 말고 들러 주십시오.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은박지 쟁반에 담긴 팥떡을 나누어 주던 경호네한테 누구라 할 것 없이 덕담처럼 던진 말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쌀 안 먹고 연탄 안 때고 살 수는 없으니까 경호네를 잊고 살 수는 없지.”
딱히 그것뿐이라면 또 모른다. 듣기 좋은 말만 뜯어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므로, 그깟 덕담쯤이야 인사 치레로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포 슈퍼에 들를 때마다 은근히 얹어 주던 덤이며, 찾아 줘서 고맙다고 손에 쥐어 주던 빨랫비누 한 장씩을 누구라도 한 번씩은 받게 마련이었으므로, 입을 싹 씻고 돌아서기가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다) 아이들 속에서 끼여 놀던 지물포집 막둥이가 넘어졌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앙앙 울어 대는 것을 신호로 여자들은 제각각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빈 자리에는 이른 봄볕만 엄청 푸졌다.
(라) 처음엔 고향 동네의 쌀을 받아다 파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다음 해에는 연탄 배달까지 일을 벌일 만큼 내외간이 모두 억척스럽고 성실한 일꾼이었다. 성품 또한 모난 데 없이 두루뭉술하고 어른을 알아볼 줄 알며 노상 웃는 얼굴이어서, 원미동 사람들에게 고루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김포 슈퍼의 개업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 찾아가서 과자 한 봉지, 두부 한 모라도 사주면서 부지런한 내외의 앞날을 격려해 주었다.
(마) 싱싱 청과물의 주인 사내는 이제 막 이사와서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