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을 차고 - 김 영 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할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키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작품 정리
∝ 갈래 : 자유시, 참여시
∝ 성격 : 의지적, 참여적, 직서적, 저항적, 상징적
∝ 어조 : 결연한 남성적 어조
∝ 표현 : 주정적 정감의 직서적 표출
∝ 제재 : 독(毒)
∝ 주제 : 순결한 삶의 의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결 의식과 삶의 의지
∝ 특징 : ① 상징에 의한 심상 ② 두 삶의 자세의 대조
∝ 출전 : <문장> 10호 (19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