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자료] 과학기술인가, 과학과 기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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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 > 중학교 > 3학년 > 과학 > 공통학기
 
자료번호 28849
자료분류 중학교 / 3학년 / 과학 / 공통학기
제목 과학기술인가, 과학과 기술인가?         
자료점수
[중3]과학_공통학기_요점정리(과학과기술)#17d0kp3_28849.hwp(Size:17.0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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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가, 과학과 기술인가?


대중적인 의미에서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구별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는 유명한 과학자와 기술자로 누구를 생각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과학자의 이름에는 아인슈타인이나 갈릴레오, 다윈, 뉴턴 등이 등장할 것이고 유명한 기술자의 이름에는 아마도 에디슨이 가장 첫째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소위 ‘문명의 이기(利器)’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정작 그 이로운 물건들을 만든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과학보다는 기술이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을 기억하면 사람들의 인지도와 사회적 역학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료설명]

과학기술인가, 과학과 기술인가?

 

대중적인 의미에서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구별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는 유명한 과학자와 기술자로 누구를 생각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과학자의 이름에는 아인슈타인이나 갈릴레오, 다윈, 뉴턴 등이 등장할 것이고 유명한 기술자의 이름에는 아마도 에디슨이 가장 첫째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소위 ‘문명의 이기(利器)’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정작 그 이로운 물건들을 만든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않는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과학보다는 기술이 사회적 영향력이 더 크다는 점을 기억하면 사람들의 인지도와 사회적 역학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자와 기술자가 항상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과학자와 기술자의 역할을 가장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분명한 과학자-기술자 구분에서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이론과학이 실험과학으로부터 분명하게 독자적 정체성을 갖고 독립하기 전에는 과학은 곧 관찰과 실험과 결합된 사유 활동을 의미했고,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위해 필요한 여러 기술적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해 나가면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점에 있어서 갈릴레오, 다윈, 뉴턴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훌륭한 과학자들은 관찰이나 실험과정을 고안하고 수행하는 뛰어난 기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실험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데 있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우주의 신비를 밝혀낸 이론물리학자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은 냉장고 설계를 비롯한 여러 고안에 대해 특허를 취득했고 이 특허를 팔아서 매년 상당한 수입을 챙겼다.

 

물론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술자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곧바로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 볼프강 파울리처럼 그가 방문한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험을 망쳐놓을 정도로 실험과 거리가 멀었던 과학자나 연필처럼 유용한 물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기술자들이 분명히 구별되는 한에 있어서는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연구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공학(engineering)의 등장이다. 공학은 19세기에 전기공학을 필두로 시행착오에만 의존한다고 비판된 기존의 기술자들(그 비판이 정당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지만)과의 분명한 차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정체성의 상당 부분은 ‘과학적인’ 혹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기술이었다. 그러므로 기술은 과학을 응용한 것이라는 대중적인 이미지는 공학이 자신을 규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공학의 등장이 갖는 의미를 고려하면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뚜렷하게 구별되는 활동으로 구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응용과학자 중에는 공학자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과학지식의 실용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고 공학자 중에서도 컴퓨터 공학의 인공지능 연구자처럼 지능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이해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나노과학 및 나노기술의 경우에는 어디까지가 과학자의 연구영역이고 어디까지나 공학자의 연구영역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예 나노과학기술로 총칭해서 부르기도 할 정도이다. 이처럼 기술연구가 나름대로의 독자적 발전경로를 벗어나 과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과학과 기술은 그 구체적인 활동의 측면에서는 연구자와 연구주제 모두 혼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점에 주목하여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부르노 라투르는 아예 기술과학(technoscience)이라는 용어로 현대 과학기술을 묶어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을 이렇게 뭉뜽그려 이해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연구대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기술은 ‘필요에 따라 발명한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련된 것이다. 그에 비해 과학은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낸 인공물이 아니라 원래 존재했던 ‘그대로의 것’인 자연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과학과 기술의 본령은 인공물과 자연이라는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는 연구대상으로 구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의 경계를 흐리는 응용과학을 제외하더라도 둘 사이의 차이를 인공물과 자연의 구별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순수과학으로 한정하면 할 수록 연구주제나 실험대상은 자연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모형만들기 과정이나 실험실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분리해 낸 것들이다. 실제 세계는 수없이 많은 인과 과정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런 복잡한 인과과정을 모두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까지의 우리의 인지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므로 과학연구는 이론이든 실험이든 이런 복잡한 인과과정의 일부를 추려내어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된다. 레이저는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과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조절하여 특정 방식으로 집중하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장치이다. 이 장치는 철저하게 전자의 행태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인간이 양자물리학적 이해에 기반하여 레이저를 만들기 전에 레이저에 해당하는 현상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마찬가지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여러 실험 기법들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변형생물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현대과학은 복잡한 현상의 배후에 놓여있는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특정 인과과정을 증폭시키거나 고립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대가(?)는 과학이 자연 그대로에 대해 연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은 인공물을 사용하여 자연의 배후에 작동하는 원리를 알아내려는 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과학과 기술이 인공물 사용의 여부로 간단하게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과학과 기술의 연구대상이 인공물이냐 아니냐의 구별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소 핵심을 벗어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연구에 등장하는 인공물과 기술연구에 등장하는 인공물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레이저의 예로 돌아가보자. 레이저의 원리가 자연에 내재하는 것인 한 레이저로 지칭될 수 있는 현상이 자연 어디선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비록 그 가능성이 낮거나 실제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레이저라는 인공적인 현상은 가능성의 영역에서 자연현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다. 지름이 천 킬로미터인 금덩어리는 아마도 전 우주를 통틀어 없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쩌면 은하수 너머 저 먼 별에 그런 금덩어리가 버젓이 버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아는 물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지름이 천 킬로 미터짜리 금덩어리가 존재할 수 없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다루는 인공물은 비록 인간의 행위에 의해 비로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는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이에 비해 공학이 다루는 인공물은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개발되거나 우연히 발명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에게 국한된 특정한 효용성을 갖지 않으면 계속 보존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진다. 앞서 지적한 금덩어리와는 달리 은하수 너머를 아무리 뒤져도 삼성 LCD TV나 LG 모니터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연구대상을 삼는 인공물의 구체적인 성격에 입각하여 구별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약하자면 과학은 가능적으로라도 자연현상일 수 있는 인공물을 다루는 반면 기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설계에 의존하는 인공물을 다룬다는 것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앞 호에서 논의했던 과학지식의 구성적 성격을 떠올려보면 ‘가능적으로 자연현상’이라는 판단 자체가 현재 우리가 가진 특정한 방식의 과학지식에 의존하는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무엇이 ‘가능적으로 자연현상’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과학지식이고 이 과학지식이 자연을 그대로 읽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일정 정도 인간의 창조적 구성작업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과 기술의 차이점은 다시 불분명해질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이 물음을 더 탐색해보기로 하겠다.

 


1.똥뚫꽉
(2008-2-29 00:22:43)
왜 제 컴퓨터에선 안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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